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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資治通鑑

資治通鑑 卷八十八 晉紀十 孝愍皇帝 建興元年(313) 夏四月) 裴嶷淸方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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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建興元年(313) 夏四月) 裴嶷淸方有幹略, 爲昌黎太守, 兄武爲玄菟太守. 武卒, 嶷與武子開以其喪歸, 過廆, 自玄菟西歸, 道過棘城. 菟, 同都翻.廆敬禮之, 及去, 厚加資送. 行及遼西, 道不通, 嶷欲還就廆. 開曰:「鄕里在南, 柰何北行! 且等爲流寓, 段氏强, 慕容氏弱, 何必去此而就彼也!」嶷曰:「中國喪亂, 喪, 息浪翻. 今往就之, 是相帥而入虎口也. 帥, 讀曰率. 且道遠, 何由可達! 言昌黎去河東旣遠, 又路梗, 無由得達. 若俟其淸通, 又非歲月可冀. 言天下方亂, 道路未有淸通之時. 今欲求託足之地, 豈可不愼擇其人. 汝觀諸段, 豈有遠略, 且能待國士乎! 慕容公修行仁義, 有霸王之志, 加以國豊民安, 今往從之, 高可以立功名, 下可以庇宗族, 汝何疑焉!」開乃從之. 旣至, 廆大喜. 陽耽淸直沈敏, 爲遼西太守, 沈, 持林翻.慕容翰破段氏於陽樂, 獲之, 廆禮而用之. 游邃·逄羨·宋奭, 皆嘗爲昌黎太守, 逄, 皮江翻. 與黃泓俱避地於薊, 後歸廆. 王浚屢以手書召邃兄暢, 暢欲赴之, 邃曰:「彭祖刑政不修, 華·戎離叛, 以邃度之, 必不能久, 兄且磐桓以俟之.」 易屯卦初九爻辭曰:磐桓, 利居貞. 王弼曰:「不可以進, 故磐桓也. 馬曰:磐桓, 旋也. 度, 徒洛翻.暢曰:「彭祖忍而多疑, 頃者流民北來, 命所在追殺之. 今手書殷勤, 我稽留不往, 將累及卿. 累, 力瑞翻. 且亂世宗族宜分, 以冀遺種.」邃從之, 卒與浚俱沒. 種, 章勇翻. 卒, 子恤翻.宋該與平原杜羣·劉翔先依王浚, 又依段氏, 皆以爲不足託, 帥諸流寓同歸於廆. 東夷校尉崔毖請皇甫岌爲長史, 卑辭說諭, 終莫能致,廆招之, 岌與弟眞卽時俱至. 古語有之:鳥則擇木, 木豈能擇鳥! 帥, 讀曰率. 說, 輸芮翻.

遼東張統據樂浪·帶方二郡, 與高句麗王乙弗利相攻, 連年不解. 樂浪王遵說統帥其民千餘家歸廆, 廆爲之置樂浪郡, 爲, 于僞翻. 樂浪, 音洛琅. 句, 如字, 又音駒. 麗, 力知翻. 以統爲太守, 遵參軍事.


=======원문========================


○ (建興元年(313) 夏四月) 裴嶷淸方有幹略, 爲昌黎太守, 兄玄菟太守. 卒, 以其喪歸, 過玄菟西歸, 道過棘城. 菟, 同都翻.敬禮之, 及去, 厚加資送. 行及遼西, 道不通, 欲還就曰:「鄕里在南, 柰何北行! 且等爲流寓, 段氏强, 慕容氏弱, 何必去此而就彼也!」曰:「中國喪亂, 喪, 息浪翻. 今往就之, 是相帥而入虎口也. 帥, 讀曰率. 且道遠, 何由可達! 昌黎河東旣遠, 又路梗, 無由得達. 若俟其淸通, 又非歲月可冀. 言天下方亂, 道路未有淸通之時. 今欲求託足之地, 豈可不愼擇其人. 汝觀諸, 豈有遠略, 且能待國士乎! 慕容公修行仁義, 有霸王之志, 加以國豊民安, 今往從之, 高可以立功名, 下可以庇宗族, 汝何疑焉!」乃從之. 旣至, 大喜. 陽耽淸直沈敏, 爲遼西太守, 沈, 持林翻.慕容翰段氏陽樂, 獲之, 禮而用之. 游邃·逄羨·宋奭, 皆嘗爲昌黎太守, 逄, 皮江翻. 與黃泓俱避地於, 後歸王浚屢以手書召欲赴之, 曰:「彭祖刑政不修, 華·戎離叛, 以度之, 必不能久, 兄且磐桓以俟之.」 易屯卦初九爻辭曰:磐桓, 利居貞. 王弼曰:「不可以進, 故磐桓也. 曰:磐桓, 旋也. 度, 徒洛翻.曰:「彭祖忍而多疑, 頃者流民北來, 命所在追殺之. 今手書殷勤, 我稽留不往, 將累及卿. 累, 力瑞翻. 且亂世宗族宜分, 以冀遺種.」從之, 卒與俱沒. 種, 章勇翻. 卒, 子恤翻.宋該平原杜羣·劉翔先依王浚, 又依段氏, 皆以爲不足託, 帥諸流寓同歸於. 東夷校尉崔毖皇甫岌爲長史, 卑辭說諭, 終莫能致,招之, 與弟卽時俱至. 古語有之:鳥則擇木, 木豈能擇鳥! 帥, 讀曰率. 說, 輸芮翻.
遼東張統樂浪·帶方二郡, 與高句麗王乙弗利相攻, 連年不解. 樂浪王遵帥其民千餘家歸爲之置樂浪郡爲, 于僞翻. 樂浪, 音洛琅. 句, 如字, 又音駒. 麗, 力知翻. 以爲太守, 參軍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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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텍스트는 고대 중국의 역사적 기록으로 보입니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建興元年(313) 夏四月) 裴嶷淸方有幹略, 爲昌黎太守, 兄武爲玄菟太守. 武卒, 嶷與武子開以其喪歸, 過廆, 自玄菟西歸, 道過棘城. 

○ (建興元年(313) 夏四月) 裴嶷淸方有幹略, 爲昌黎太守, 兄玄菟太守. 卒, 以其喪歸, 過玄菟西歸, 道過棘城 菟, 同都翻.

건흥 원년(서기 313년) 여름 4월, 배억(裴嶷)은 청방(淸方)에 재능이 있어 

창려 태수(昌黎太守)가 되었다, 

형 배무(裴武)는 현토 태수(玄菟太守)였다. 무가 죽자, 

배억은 형 배무의 아들 개(開=배개裴開)와 함께 장례식을 치르고 

돌아오던 중, (모용)외(廆)를 지나 현토 서쪽으로 돌아가며 극성(棘城)을 지났다. 


廆敬禮之,

(모용)외는 경의를 표하며 예로서 맞이하여


及去, 厚加資送. 行及遼西, 道不通, 欲還就


曰:「鄕里在南, 柰何北行! 且等爲流寓, 段氏强, 慕容氏弱, 何必去此而就彼也!」


曰:「中國喪亂, 喪, 息浪翻. 今往就之, 是相帥而入虎口也. 帥, 讀曰率. 且道遠, 何由可達! 

昌黎河東旣遠, 又路梗, 無由得達. 

若俟其淸通, 又非歲月可冀. 

言天下方亂, 道路未有淸通之時. 

今欲求託足之地, 豈可不愼擇其人. 汝觀諸, 豈有遠略, 且能待國士乎! 

慕容公修行仁義, 有霸王之志, 

加以國豊民安, 今往從之, 高可以立功名, 

下可以庇宗族, 汝何疑焉!」


乃從之. 旣至, 


大喜. 陽耽淸直沈敏, 爲遼西太守, 

沈, 持林翻.


慕容翰段氏陽樂, 獲之, 

禮而用之. 游邃·逄羨·宋奭, 皆嘗爲昌黎太守, 逄, 皮江翻. 

黃泓俱避地於, 後歸

王浚屢以手書召欲赴之, 

曰:「彭祖刑政不修, 華·戎離叛, 以度之, 必不能久, 兄且磐桓以俟之.」 

易屯卦初九爻辭曰:磐桓, 利居貞. 

王弼曰:「不可以進, 故磐桓也. 曰:磐桓, 旋也. 度, 徒洛翻.

曰:「彭祖忍而多疑, 頃者流民北來, 命所在追殺之. 

今手書殷勤, 我稽留不往, 將累及卿. 累, 力瑞翻. 

且亂世宗族宜分, 以冀遺種.」從之, 

卒與俱沒. 種, 章勇翻. 卒, 子恤翻.

宋該平原杜羣·劉翔先依王浚, 又依段氏, 皆以爲不足託, 帥諸流寓同歸於. 東夷校尉崔毖皇甫岌爲長史, 卑辭說諭, 終莫能致,招之, 與弟卽時俱至. 古語有之:鳥則擇木, 木豈能擇鳥! 帥, 讀曰率. 說, 輸芮翻.

遼東張統樂浪·帶方二郡, 與高句麗王乙弗利相攻, 連年不解. 樂浪王遵帥其民千餘家歸爲之置樂浪郡爲, 于僞翻. 樂浪, 音洛琅. 句, 如字, 又音駒. 麗, 力知翻. 以爲太守, 參軍事.

(배억 일행이) 떠날 때는 풍성한 선물을 하였다. 

료서(=요서=遼西)에 이르렀으나 길이 막혀 있어 배억은 (모용)외에게 돌아가려 했다. 

개는 말했다: "우리 고향은 남쪽에 있는데 왜 북쪽으로 가려 하나? 

우리는 유랑하는 신세이고, 단씨는 강하고, 모용씨는 약한데 왜 여기를 떠나 

저들에게 가려 하는가?" 

익은 말했다: "중국은 혼란스럽고, 지금 그곳으로 가면 호랑이 입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또한 길이 멀어 도달하기 어렵다. 

창려가 하동에서 멀고, 길이 막혀 있어 도달할 수 없으며, 

길이 맑아질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다. 지금 우리는 안정적인 곳을 찾고 있으니, 그 사람을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 

단씨를 보라, 그들은 장기전략이 없고, 국사를 대할 수 있겠는가? 

모용 공은 인의를 닦고 패왕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나라가 풍요롭고 백성이 안정되어 있다. 지금 그곳에 가면 공명을 세울 수 있고, 하위로는 종족을 보호할 수 있다. 

왜 의심하는가?" 개는 그의 말을 따랐다. 도착하자 희는 크게 기뻐했다. 

양담은 청렴하고 신중하여 료서 태수가 되었다. 

모용한은 단씨를 양락에서 격파하여 포로로 잡았고, 

희는 그를 예우하며 사용했다. 유수·방선·송석은 모두 창려 태수였으며, 황홍과 함께 적지에서 피신하다가 희에게 귀속되었다. 왕준은 수차례 손편지로 수의 형 창을 부르려 했지만, 창은 가지 않았다. 수는 말했다: "평조의 형벌이 바르지 못하고, 화와 융이 배반하여, 내 생각에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형은 잠시 기다려 보자." 그러나 창은 왕준의 부름을 받고 갔고, 결국 왕준과 함께 멸망했다. 송해와 평원 두군·류항은 먼저 왕준에게 의지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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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씨에게도 의지했으나, 둘 다 신뢰할 수 없다고 여겨 희에게 귀속되었다. 동이교위 최비는 황보극을 장사로 청하였으나, 그를 설득할 수 없었다. 희가 그를 초대하자, 극은 그의 동생 진과 함께 곧장 도착하였다. 옛말에 이르기를, "새는 나무를 선택하지만, 나무는 새를 선택할 수 없다"고 하였다.


요동의 장통은 낙랑과 대방 두 군을 점령하고 고구려 왕 을부리와 서로 공격하며, 몇 년간 해결되지 않았다. 낙랑왕 준은 통을 설득하여 그의 백성 천여 가구를 희에게로 이끌었고, 희는 이를 위해 낙랑군을 설치하고 통을 태수로, 준을 참군사로 삼았다.


이 텍스트는 고대 중국의 역사적 인물들과 그들의 활동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습니다. 번역은 역사적 맥락과 문체를 고려하여 한국어로 옮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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